내 생각에 편의점 운영에서 발주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매출에도 영향을 끼치고 나도 모르게 점점 쌓여가는 재고에도 악성 재고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편의점 1년 하고 그만둔 썰 - 발주
"끝끝내 엄마에게는 어려웠던"
편의점 시작 전에 교육을 받을 때에도 발주를 직접 해보지만 사실상 뭐가 뭔지도 모를 때이고 그냥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정도로만 딱 배웠던 것 같다. 작은 모니터 화면에 엑셀 문서처럼 정렬되어 있는 상품 이름만 보고 발주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하기에는 매우 어렵다. 우리 엄마도 내가 없는 며칠 동안 단 한 번도 주문한 적이 없는 대용량 비비고 김치를 대량 발주해서 단 한 개도 팔지 못하고 전부 다 폐기를 쳐야만 했다.
잘 팔리지 않는 상품이나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을 처리할 수 있도록 약간의 지원금이 나오지만 술은 반품이 안 된다. 그래서 술은 발주를 정말 잘해야 한다. 술은 매가도 비싸기 때문에 인기가 없는 상품을 주문하거나 또 실수로 대량 주문을 하게 되면 그 재고를 그대로 떠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캔맥주의 경우 이름만 보고 어떤 상품인지, 어떤 게 인기가 있고 요즘 무엇이 잘 나가는지 처음에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엄마는 아사히 없냐는 손님의 질문에 아사히가 뭐냐고 되물으셨다. 아사히가 맥주인지도 모르셨던 것이다.
발주는 많이 해봐야 실력이 는다. 그래서 초반에는 조금씩 발주를 해서 나가는 것을 보고 발주를 넣는 것이 좋다. 물류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들어오고 냉식은 매일 들어오므로 소극적으로 발주를 하고 나가는 것을 보며 조금씩 발주량을 늘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발주 초보일수록 하나라도 더 팔고 싶은 욕심과 혹시 재고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으로 무작정 발주를 넉넉하게 넣는 경우가 있다. 우리 엄마가 그랬다. 내가 없는 동안 엄마가 저지른 발주 사고를 수습하느라 오랜 기간 동안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것은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인데 절대 발주장려금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다음으로 편의점을 운영하게 되시는 분이 우리 엄마 또래의 여사님이셨다. 그분은 같은 계열의 편의점을 운영하시다가 건물의 계약이 만료되어 계약이 종료되었고 마침 우리가 계약을 해지하게 되면서 우리 편의점과 계약을 하게 되셨다. 나에게는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분이다. 그분이 계약을 맺고 전에 하시던 편의점의 재고를 우리 가게에 둔다고 가지고 오셨었는데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다. 현재 우리 가게에 진열된 상품보다 더 많은 양의 재고를 가지고 오셨다. 대부분 악성 재고로 유통기한도 지나고 이미 유행도 지나 팔 수 없는 물건들이었다. 반품 지원금을 모두 소진하고 그것을 폐기처리하면 고스란히 다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가지고 계신 것이다.
그 금액은 무려 원가로만 400만 원가량이었다. 매가가 아닌 원가 금액이다. 대충 살펴본 결과 발주장려금인 상품들이 꽤 보였다. 발주장려금은 우리가 정해진 물량을 발주하면 말 그대로 장려금을 주는 것이다. 1,000원부터 많게는 몇 만 원 단위도 있다. 이것이 함정이다. 그것이 팔리지 않고 반품 또한 할 수 없을 때는 고스란히 나의 재고가 되는 것인데 발주장려금만 보고 주문을 넣고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엄청난 재고가 되는 것이다.
사실 발주장려금액이 높은 것일수록 그렇게 매력적인 상품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우리 매장에서 잘 나가는 상품군이면 넣어도 되겠지만 나가지 않는 것이라면 발주장려금의 유혹에 절대 넘어가서는 안 된다. 우리 매장은 어린아이 손님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장난감이나 어린이 식품류는 절대 넣지 않았다. 어린이 장난감이나 장난감과 함께 있는 식품의 경우는 장려금이 높은 편이지만 우리 가게에서는 거의 나갈 일이 없기 때문에 넣지 않았다. 사실 나도 처음에 모르고 발주를 넣었다가 나가지 않아 결국 반품을 한 후에 깨달은 것이다. '혹시 들여놓으면 나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주문을 했던 것이지만 결국 몇 개 팔지도 못하고 반품을 했다.
나갈 만한 상품인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하고 유튜브에서 먹방으로 유명해진 상품들, SNS에서 유행하고 있는 상품들, 방송에 노출된 상품들을 잘 알고 있어야 발주를 넣는 데 도움이 되고 매출로 이어지는데 어르신들은 이것이 쉽지 않다. 발주장려금은 신제품이나 발주장려금이 아니면 사람들이 절대 주문하지 않을 상품들 그리고 편의점의 다양한 상품 구색을 위해 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꾸준히 잘 팔리는 상품이라면 발주장려금을 주지 않아도 발주를 넣으니 발주장려금을 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편의점에서 팔고 있는 모든 상품군을 파악하고 어떤 상품을 사람들이 많이 찾는지를 알아야 합리적인 발주가 가능하지만 우리 엄마는 이 부분을 굉장히 어려워하셨다. 전기 소물류에서 5핀이 무엇이고 8핀이 무엇인지도 전혀 모르셨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편의점에서 구매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매가도 비싸다. 그러니 발주장려금이 높다. 나는 단 한 번도 발주하지 않았지만 우리 엄마는 그것도 발주를 넣었다.
상품의 구색을 맞추고 매출을 늘리기 위해 다양하게 발주를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주장려금 상품을 무분별하게 넣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엄마처럼 컴퓨터 엑셀 화면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에게는 발주는 분명히 어렵고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린다. 끝끝내 엄마는 친해지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셨다.